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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蝗蟲

 

황충(蝗蟲, locust)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메뚜기를 뜻합니다.

 

어떤 요인으로 특정 지역에 메뚜기 무리의 밀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생존을 위해 뒷다리는 퇴화되고 날개는 커지며 이상식욕을 가진 황충이 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변신한 메뚜기들은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것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주변을 황폐화시킵니다. 이들에 의한 피해는 성경의 출애굽기에도 10 재앙 하나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아주 예로부터 악명이 높았다는 것을 있죠.

 

1873년부터 1877년 사이에 있었던 북미의 황충 피해는 특히 심해서, 얼마나 많은 메뚜기들이 있었는지 지금도 로키산맥에는 그들이 죽어서 쌓인 사체들이 지층이 되어 발견될 정도라고 하네요.

 

 

 

그런데 문득, 지구상의 생명체 입장에서는 인간도 황충의 존재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한 인류의 번성으로 인구 밀도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인간들은 살 곳을 찾아 멀리 퍼져나갔습니다. 생존을 위해 날개를 키워 멀리 이동했던 황충처럼요. 메뚜기들은 멀리 날아가기 위한 변태變態를 했고, 인류는 후세의 발명을 통해 획기적인 이동 수단을 얻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네요.

 

지나가는 곳마다 황폐화되는 것도 황충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과거부터 인류의 이주에는 예외 없이 해당 지역 생물의 대규모 멸종과 생태계 파괴가 따라왔습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아작을 내고 다시 살만 한 곳으로 떠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죠. 엄밀히 따지자면 황충보다 더 넓은 범위에, 더 많은 피해를 주고 있는 셈입니다. 간접적인 부분까지 생각한다면 지구상에 인간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은 없으니까요.

 

죽어서도 로키산맥에 그 흔적을 남긴 황충 떼처럼, 인류도 지구에 수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마 지구상 어떤 생명체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이 많이요. 만약 인류가 멸종되고 이후 우리가 살았던 흔적들이 지층이 된다면, 수많은 콘크리트 잔해와 플라스틱, 오염된 쓰레기로 가득 찬 거대한 층이 되지 않을까요? 아마 쉬이 사라지지 않는 막대한 부산물들을 남긴 단일종으로 이름을 떨치게 될 것 같습니다.

 

 

 

글 쓰고 보니 황충 욕할 것 하나도 없네요.

역시 사람이 가장 무섭습니다.

 

한편, 앞서 말씀드렸던 로키산맥의 황충들은 맹렬한 기세를 자랑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절멸했다고 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하며 지금은 빙하 속 사체로 남아 거대한 지층이 된 그들의 흔적만을 볼 수 있죠.

 

영원할 것처럼 지구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도 어쩌면 황충처럼 거대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봅니다.

 

 

 

...

.......

 

 

... 전 그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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